벗지 94회 - 천주교 광주대교구 맹인 선교회장(이병윤 고11회)
-시각장애인들의 대부로서 진정한 사회 봉사자 역할-
돌이켜 생각하면 이병윤 벗의 고등학교 학창시절은 어느 친구들보다도 간직하고픈 추억여행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은 바깥세상을 볼 수 없으니, 태봉의 동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땐 더욱 마음이 아프단다.
이병윤 벗이 눈을 실명하게 된 동기는 군대생활에서다.
1976년 사나이로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경북 포항에서 고된 훈련을 받았지만 다른 동기들과 함께 하는 훈편이기에 견뎌 낼 수 있었다. 어느날 훈련을 마치고 동료들과 술파티가 벌어졌는데 모두가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있던 중 한 친구가 메틸알콜을 가져와 술이라고 권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 그것을 마셨는데 이것이 너무나도 큰 비극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같이 술을 마셨던 동료중 4명이 죽고 이병윤 친구는 목숨은 구했지만 눈은 실명하게 된 것이다.
1980년 1월 전역 이후, 고향 장성 남면 분향리에 내려가 칩거하게 되었고, 정말 이 세상을 계속 살아야 하는가 갈등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 이병윤 벗에게 삶에 대한 의지와 교훈을 준 것은 살레시오고 재학시절 돈보스꼬의 가르침이었다고 한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간 천주교 대교구 맹인선교회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사업을 통해 소외되고 사회 적응하지 못하는 시각장애 형제 자매들이 새로운 삶을 찾도록 도와주었으며, 임동에 해태안마시술소를 차려 시각장애인들이 출장 근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줌은 물론, 북구 연제동 "평화의 집"과 동구 동명동 "막달레나의 집"에 오갈데 없는 시각장애인 17명을 보호케 함으로써 진정한 사회봉사자 역할을 하고 있단다.
본인의 심신을 추스르기도 벅찬 상황에서 다른 장애인들을 돌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이것은 살레시오 전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약 1,400명의 회원으로 맹인선교회 후원회를 조직하고 그중 100명의 자원봉사자를 결성,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광주시 장애인총연합회 이사와 광주시 장애인 자판기 사업단장, 사단법인 무등 장애인 자활공동체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1998년에 천주교 광주대교구상과 1998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 다가오는 6월 9일 모교 졸업 30주년 기념행사를 맞아 떳떳하고, 우리 동문들 앞에 설 각오가 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 진정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이병윤 벗의 각오를 들어보면서 우리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벗들 중에 자랑스런 살레시안들이 얼마든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들을 발굴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워주고 그들이 하는 사업에 적극 협력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린 모두 살레시안 한가족이기 때문이다.
◈ 이병윤 회장 경력사항
. 1998년 1월 1일 : 천주교 광주대교구 맹인선교회장 취임
. 1994년 1월 1일 : 광주시 장애인 총연합회 이사
광주시 맹인복지 연합회 이사 / 대한 안마사협회 광주지부이사 / 광주시 장애인 복지관 운영위원 / 1997년 3월 1일 : 광주시 장애인 자판기 사업 단장
. 사단법인 무등장애인 자홀공동체 대표이사
대한안마사협회 광주시지부 복지부장 / 사단법인 광주시 장애인 총연합회 사회복지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