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살레시오중,고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던 이탈리아 출신 마신부님.
1956년 개교 때부터 살레시오중 초대 교장신부님으로 부임하신 분이라 중흥동에서 졸업했던 그 수 많은 졸업생들은 생전의 이 분을 모를 일이 없을 것이다. 일부 다른 신부님도 재직하셨지만 1981년 은퇴하실 때까지 오랫동안 교장신부님으로 재직하셨던 살레시오회 신부님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흥동 371번지 교정에서의 조회 시간이면 유창한 한국어로 우리 재학생들에게 훈화를 말씀하시며, 당시에는 흔치 않은 자가용을 타고 다니시던 신부님. 그것도 이탈리아제 피아트 소형차량을 손수 운전하시던 모습이 고독해 보이기도했다. 물론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여러 사제들과 같이 거주하시기에 일반 가정에서의 가족들과 지내는 한국 문화로 보면 그런 시각을 갖게 되었을지 모른다.
마신부님은 교정 현관 앞에 차량을 곧잘 주차하시곤 하셨다. 당시엔 교직원들 차량은 하나도 없었고, 오로지 이 차량이 유일하였다. 그 이후에 스쿨버스를 도입하여 운행하였다.
당시에 교사로 재직하셨던 하성래 은사님의 살레시오고 회고록에 보면, 마신부님께서 교무실에 들리시고 향긋한 커피를 직접 타서 대접해 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다. 그 당시엔 커피는 보편화 된 음료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보기 드믄 커피라서 매우 이국적인 음료였던 것이다. 교내엔 여성 선생님이 없었고, 이후에 음악 선생님이 한 분 발령받으셨고, 그 후로 채용하신 것으로 안다.
그리고, 학생들 가정 형편도 열악한 사람이 많았다. 농촌 출신이 많은 편이라, 각 군에서 광주로 유학해 온 학생들은 그런대로 교육 열의가 많은 지방 부모님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60년, 1970년대는 우리 농촌에 한 끼 식사도 여의치 않은 가정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위생적인 상수도 시설도 없었고, 우물물을 사용하거나, 손으로 작동하여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푸를 사용하여 식수를 해결할 정도로 그만큼 문화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